선생님께 전화로 연락드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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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에 대한 권위가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요즘이라도, 뉴스에서 보는 '선생님'이라는 단어와 내가 정말 존경하는 선생님과는 전혀 다른 단어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내가 지금까지 연락드리는 선생님은 총 여섯분인데, 한 분은 중학교 2,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고, 두 분은 고등학교 2, 3학년 때 담임선생님, 그리고 한 분은 고등학교 때 물리(선택이었다) 선생님, 마지막 한 분은 대학고 2학년 2학기 때 들었던 교양 경제과목 교수님(사실은 '교수'는 직책이고 이 분께도 '선생님'이라고 해야하겠지만, 그냥 이렇게 쓰곤 한다.)이시다.

나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사람(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런 단어를 쓴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이라서, 이유가 없으면 행동하지 않는 아주 나쁜 패턴을 가졌다. 따라서 연락드리는 선생님들은 모두 존경하는 선생님들이시고, 스승의날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제 바빠서 잘 찾아뵙지는 못해도 꼭 카드나 편지를 쓰곤 했다.
이 패턴이 약간 바뀐 것은 올해 스승의 날이었는데, 올해는 정말 너무 바빠서 잠도 별로 못자던 중이라, 도저히 여섯분의 카드를 성의있게 쓸 자신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스승의 날 바로 전에는 부모님도 계시지 않는가. 그 편지를 쓰고나니 짬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 처음으로 전화를 드렸다. 사실은 편지쓰기보다 전화가 더 쉽다. 전화가 시간도 약간 덜 걸릴 뿐만 아니라, 편지를 들고 우체국에 가야한다는 번거로움도 없으며, 책상과 펜이 없어도 시간이 날 때 짬짬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선생님들은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특히 작년부터는 중고등학교의 방학이 내 방학보다 짧아서 한번도 찾아뵙지 못했던 터라 편지만으로 인사드리는 것보다 내년부터는 계속 전화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 마음이 오묘한 것이, 어릴 적에는 편지도 하도 많이 주고받으니, 받은 편지들 다 소중하긴 하지만 그 소중함이 조금은 덜했던 것 같다. 요즘은 기숙사 편지함에 간혹 친구가 보낸 편지라도 있으면 그게 글로 쓴 길다란 편지든 짧게 쓴 이쁘장한 카드든 상관없이 이게 왠일인가 싶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오히려 전화는 필요하면 간혹 하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반면 선생님들께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카드나 편지를 쓰게 마련이니, 스승의날이나 크리스마스때면 수없이 받는 카드들 중 예전 제자의 것이 들어있어도, 아무렴 그 임팩트가 덜할 듯 싶다. 이년 전 중학교에 놀러갔더니 선생님께서 내가 보낸 카드와 함께 편지로 길게 쓴 다른 아이의 것을 함께 보여주시는데, 카드는 많은 반면 편지는 아무래도 수가 적어 더 선생님이 아껴하시는 것 같아서, 어차피 난 카드에도 길게 써서 보내는 데 이왕이면 앞으로는 편지로 보내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가운데 전화를 하는 제자는 얼마나 드물 것인가. 지금 학교를 다니고 있다면 하늘같으신 선생님께 직접 찾아가 말씀드릴 일이지 감히 전화를 할일은 없을 것이라 드물것이고, 이미 졸업하였다면 방학때 찾아뵙거나 편지를 쓸 생각은 해도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그간 더 쉽고 간편한 일이긴 해도 편지를 쓰고 카드를 보냈던 탓도 결국 그런 생각의 연장선이 아니었나 싶다. 선생님과 전화란 나에게 있어 왠지 연결되지 않는 두가지 각각의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 쫓겨 연결되지 않는 그 둘을 우연히 맞닿게 해봄으로써, 나는 오히려 그것이 선생님들께 더 큰 감사의 뜻을 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모든 행동과 모든 사물이 개개인에게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선물은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에게 최대한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해야하는 것이리라. 예전부터 고등학교 선생님이신 고모부가 선생님께 전화 한 번 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말씀하시곤 했지만 나는 내 노력이 조금 더 많이 드는 편지나 카드가 선생님께 더 큰 감사를 전하는 일일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선물을 드리는 마음으로, 선생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면 이번엔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보자. 내 목소리에 담긴 존경과 감사까지 전달되는 기쁜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by 빙♡ | 2006/09/04 14:39 |  뭉 쳐 둔 생 각 들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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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Frozenblue at 2006/09/04 15:13
그렇군요. 내가 편지에 들인 성의가 더 크니 상대도 만족할 거라고 스스로 믿어 버리는 건 좀 바보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지사지는 어려워요.
Commented by twina at 2006/09/04 22:28
그렇군요.. 선생님 입장에서는 꽤나 기특한 제자시겠어요^^
고등학교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아직도 알고 있다는 것 자체로 굉장하네요.
Commented by 빙♡ at 2006/09/04 23:52
Frozonblue// 그러게요 ^^; 사실 어느쪽이든 다 반가워하시긴 하시겠죠? ^^; 그래도 이왕이면 앞으로는 전화로 인사드리려구요^^

twina// 감사합니다^^; 사실 졸업 후 찾아가면 전화번호를 받아뒀던 덕분이예요 :) 게다가 저장된걸 지우진 않아서요^-^a 폰을 잃어버린 적도 없고 다행인 것 같네요^-^
Commented by 에타 at 2006/09/05 09:43
저도 전화드려본게 몇년이나 되었나 기억이 안나네요-폰바꿔서 번호도 잃어버린거 같은데;;흑
Commented by 빙♡ at 2006/09/05 12:35
에타// ㅠ.ㅠ 이런.. 그럼 일단 편지로 시작한 뒤에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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