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정신과 소명의식
2008년 5월을 기해 http://sedrinne.tistory.com/로 이전했습니다 :)
티스토리에서 다시 만나요 ^-^

  청진기를 샀습니다. 더불어 신경학적 검사를 위한 해머도 같이 샀는데, 올 한해는 매주 한번씩 신체 검진에 관한 실습을 계속 하게 되는 덕분입니다. 가운을 단체로 맞추면서,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입학할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년이면 병원실습을 돌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다랄까요. 샘플로 나온 가운을 돌아가며 입어보면서, 선생님 같은 자태가 나오는지 서로 쳐다보며 웃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해부학 같은 것을 오히려 더 의학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할 것 같은데, 실제로 해부학은 모든 것의 기본이긴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기본이라 느낌이 덜한 것 같습니다. 작년 한 해동안 배웠던 생화학, 생리학, 병리학, 미생물학 등등 여러가지 기초의학은 재밌을 때는 재밌었고 의외로 증례와도 많이 연관되긴 했지만, 사실 직접적으로 느낌이 와닿질 않아 전체적으로는 그냥 힘들게 공부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올해들어 배운 것들은 계통별로 배웠던 덕분인지 임상 선생님들께서 직접 들어오셔서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덕분인지, 아니면 학문 자체가 좀 더 본격적인 덕분인지. 그냥 마냥 재밌습니다. 오히려 1학년 때 보다 더 힘들고 바쁘고 양은 훨씬 더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공부를 하는 보람이 있네요.

  특히 올해들어 제일 많이 느끼는 것은, 이렇게 소명의식이 생기는구나, 하는 감탄입니다. 1학년 때와는 다르게 실제로 외래도 보시고 수술도 하시고 어떻게 하면 환자를 살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하루를 가득 채우시는 선생님들이 와서 수업과 함께 환자의 case를 설명해주시노라면, 너무 많아서 눈앞이 깜깜하기도 하지만 (笑) 공부하는 보람이 이전보다 훨씬 많이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제가 제일 직업의식과 소명의식으로 열의를 불태우게 되는 순간은,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순간입니다.
"이 병은 내가 20년동안 우리 병원에 있으면서
딱 한 명 만날 수 있었을 정도로 희귀한 병이지만,
너희가 이 환자를 치료 못하면 이 환자는 죽는다."

  사실 온갖 희귀병과 난치병이 모두 모이는 정점에 있는 우리 병원에서 머리가 희끗하신 선생님이 위엄있으면서도 존경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씀하실 때면, 순간 깜깜한 강의실에 앉은 200개의 눈동자는 책상 앞에 하나씩 놓인 책상등에 못지 않게 반짝입니다.
  사실 저렇게 희귀한 병은 국시(의사가 되려면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통과해야 인턴이 될 수 있습니다.)에도 안나옵니다. 흔한 병만 다 해도 외우기 힘든데, 보지도 못하는 병까지 공부하긴 힘들죠. 게다가 일단 가르치는 선생님이 본 적 없는 환자라면(...) case presentation이 불가능 할테니까요. 그래서 다른 학교에서는 안배우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4년 동안 국시만을 향해 달리는 학교도 있겠죠.

  이 말을 곰곰히 씹어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직업의식과 소명의식은 나 아니면 안된다는 사명감에서 시작되는게 아닐까, 하고요. 20년을 대대로 물려줬다는 음식점. 그 음식점에서 요리하는 사장님인, 그 음식점을 물려받는 아들들은 '나만이 이 맛을 낼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음식점을 물려받는 것 아닐까요? 가끔은 부러워하는, 일본의 이런 장인정신은 결국 그런 자부심이 일반화되어 있는 덕분이겠죠. 그리고 더불어 생각하면, 이런 자부심은 결국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해 후회없을만큼의 수준에 이르러야,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테니까요.

  중고등학교때에 비해, 대학에 와서는 실습, 실험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느껴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내가 실습 내용을 알고 실험을 이끌지 않으면 다들 나만 쳐다보고 있을꺼라는 의무감이 있었던 반면, 지금은 나보다 더 뛰어난 아이들이 나 없이도 실습을 잘 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때문인 것 같습니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인데, 지쳤다는 핑계로 대충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같은 24시간이 주어져도,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면 조금 더 후회없는 인생을 만들 수 있겠죠.
  Carpe diem은 현재를 잡아서 후회없는 인생을 살라는 의미이지, 생각없이 놀으라는 의미는 아닐 것 같습니다. 다시 달리기 위해 잠시 휴식이 필요한 시기도 있지만, 일단 달리기로 결정했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by 빙♡ | 2006/09/03 15:13 |  뭉 쳐 둔 생 각 들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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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6/09/03 15: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Typical at 2006/09/03 15:46
Agilent 청진기를 사셨나요?
Commented by TayCleed at 2006/09/03 15:47
과거의 추억을 즐기지 말고 미래의 환상을 즐기지 말고,
현재를 즐기라는 말인가보죠?

오랜만에 글 쓰셨네요. 또 하나 느끼고 갑니다. :ㅇ
Commented by 빙♡ at 2006/09/03 16:06
비공개// 네, 정말 그런 의식이 없다면 소위 욕듣는 그런사람들이 되어버리는 것이겠지요;ㅁ; 쉬운 일이 아니니까 초심을 유지하자고 마음먹었었는데, 오히려 선생님들이 자연스럽게 그런 의식을 만들어주시니 더 감동이었습니다. 특성상 그런 의식을 더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구요.

A-Typical// 아뇨 3M Littman S.E.입니다^^; 저희학교는 다들 Littman을 계속 쓰는 것 같아요. 저는 앞으로 혹시 다른과에 가게될까봐 일단 S.E.를 샀습니다. 사실 아직은 단면 classic으로 다 들을 실력이 안되기 때문일지도요(...)

TayCleed// 사실은 죽은시인의 사회에 나온, 공부에만 집착하지 말고 한번뿐인 현재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예요. 저의 좌우명입니다. 하지만, 즐긴다는 것이 무책임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곱씹어보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너른바람 at 2006/09/03 18:39
덧글 타고 넘어왔습니다. 1초라도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얘기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시간 혹은 날짜 단위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자신을 보노라면 답답해집니다. 1초라 해도 자신의 책임인데... 그나저나 의대생분들 공부하시는 거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 링크 신고도 할게요.
Commented by 빙♡ at 2006/09/03 22:04
너른바람// 반갑습니다 :) 저도 간혹 쉬는 것도 아니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나면 허무하더라구요. 주어진 시간은 같은데 말입니다^^; 의대생은... 단체로 공부하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笑) 고3이 전국적으로 단체로 공부하기 때문에 괜찮은거나 비슷하다랄까요(...) 양은 고3보다 많지만...;;;
저도 링크 살짝 신고할께요^^
Commented at 2006/09/03 23:2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Typical at 2006/09/03 23:47
막연한 호기심에 질문 하나 합니다. 저 해머도 좋고 나쁜게 있나요? 상처 안나는 것으로 대충 때려도 될 것 같아서요. ^^
Commented by 첼로♡ at 2006/09/04 12:51
안녕하세요 :) 찰리님 블로그에서 보고 왔습니다- 이름에 똑같이 ♡가 들어가서 깜짝 놀랐어요 찰리님께서 무슨 관계라도 있냐고 물어보시더군요 흐흣 소명의식이 생긴다, 라는 말에 공감했어요. 저는 교대를 다니는데 1,2학년때는 가장 싫어했던 말이 '선생님같다'라는 말이었는데 저번엔 친구가 '너 실습갔다 올 때마다 선생님이 되어가는 것 같아'란 말에 기분이 좋아졌거든요. 그만큼 교육이라든가 아이들에 대한 생각도 많아지고요 :) 링크 가져가도 괜찮을까요? ;)
Commented by 빙♡ at 2006/09/04 14:28
비밀글// 네, 아무래도 병에 걸리거나 지인이 그렇게 되면 ... 저도 정말 친한 지인 덕분에 엄청 공부했던 기억이 나요.. 덕분에 공부할 때 그 병이 나와서 반가웠어요;;;;;

A-Typical// 글쎄요^^; 빨간 해머는 가운이 빨개져서 저걸 샀어요. 해머들은 보통 충분한 쿠션역할을 하면서도 딱딱하게 때릴 수 있도록 두꺼운 고무로 되어있는데, 탄력성과 탄탄함이 규정으로 정해져있을 것 같네요 :)

첼로♡// 안녕하세요 :) 엇 그러게요 ^-^ 반갑습니다 ^^; 전 외자 이름이 안되길래 하트를 붙여버렸는데요 ^^; 링크 반갑습니다, 저도 살짝 다니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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