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떠나보낸 적 있나요?
2008년 5월을 기해 http://sedrinne.tistory.com/로 이전했습니다 :)
티스토리에서 다시 만나요 ^-^

복숭아님의 푸른 산호초를 읽고 씁니다.

나는 원래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아버지가 큰아들이셨기 때문에 삼촌들도 다 같이 살았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아버지는 말 그대로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살리시고 동생들을 먹이고 입혀 대학보내시면서 부모님을 봉양하셔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이 만만치 않았다. 나는 워낙 어렸을 적이라 확실한 상황을 몰랐으나, 나중에 파악한 바로는 아버지의 노력은 물론이고 어머니도 박사학위의 꿈을 거의 10년 가까이 미루셔야 했을 정도였다. 일곱식구가 18평짜리 집에서 살았다. 마당이 있어 나무도 심고 했던 것은 행운이었나보다. 그래도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이런 적은 없었으니 다른 어려운 집들 앞에서는 들이댈 처지는 아니다.

긴 이야기는 접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내가 대여섯살 쯤 먹었을 때였는데, 아버지의 직장 덕분에 얻은 49평이라는 당시로는 호화로운 사택으로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그래봤자 지방이라 별거 없지만). 작은 집에 살던 어렸을 적에는 하늘색 표시가 붙은 까스 활명수를 부모님 몰래 나한테 가끔씩 맛보여 주시거나, 건강하지 않으신 몸인데도 어린 나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를 몰아 길건너 구멍가게에서 맛난 간식을 사주셨던 것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돌아가시던 날, 이제 많이 편찮으셔서 방에 이부자리를 깔고 눕거나 앉아 계셨던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다른 가족들은 모두 거실에 있었다. 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다들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장면이 생생하다. 갑자기 아버지께서 '가스 냄새가 난다'며 두리번두리번 하시다가 할아버지는 '가스냄새에 괜찮으실지' 걱정하여 할아버지 방으로 가셨는데, 이미 돌아가셨더랬다. 가스가 흐르거나 가스 냄새가 난 것이 아니라 그냥 아버지께서는 본능적으로 아셨던 것이리라. 당시 장례식장에서는 할머니가 흐느껴 우셨는데, 어린 내가 할머니에게 울지 말라고 하며 멋도 모르고 같이 울었던 것이 기억난다.

사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적은 너무 어렸던 탓인지 지금 떠올려도 그렇게 슬픈 생각이 들진 않는다. 그래서 방심했던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떤 마음이 될지는 차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여느 할머니들처럼 기력이 조금 없어지시기는 했으나, 못다니시거나 그정도는 아니었고 점차 거동이 불편해지시는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날, 넘어지셔서 팔이 부러지신 것이 문제였다. 원래 노인이 되면 부러진 뼈 같은 것은 잘 붙지 않으며, 그런 치료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다른 문제가 많이 생기는 것이다. 팔이 부러지시면서 뇌졸중이 오신 것인지, 병원에 계시다 결국 뇌졸중이 오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항상 같이 사신데다, 강의를 나가시는 엄마가 없는 낮동안 항상 할머니가 키워주신 것이나 다름 없던 나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가족에게는 고마움을 잘 못느끼듯이, 항상 곁에 있는 할머니는 오히려 가끔 뵙는 외할머니보다 덜 좋은 것처럼 느껴진 적도 있던 때다.
갑자기 기력이 없어지시고 말도 잘 못하시고 항상 누워만 계시는 할머니는 왠지 어색했다. 사실은 냄새도 났다. 욕창이 생기고 화장실의 문제가 생기시기 때문에 아무리 잘 돌봐드려도 한계는 있었다. 그렇게 3년을 앓으시는 동안 나의 관심도 점점 멀어져만 간 것 같다. 본래 너무 큰 은혜는 너무 커서 돌아볼 줄 모르는 것인가보다. 생각해보면, 그 이전에도 물론이고 그 3년 동안 할머니를 돌봐드리는 어머니도 정말 대단하셨다. 나에게 당장 그런 일이 펼쳐지면 나는 과연 얼마나 어느정도의 정성으로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막막할지 상상도 할 수 없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엔, 갑자기 할머니 상태가 너무 안좋아지셔서 다들 깜짝 놀라서 온 친척ㅡ이래봐야 아버지 다섯 형제들ㅡ을 다 불렀다. 다들 곁에서 떠날줄 모르고 지낸 하루. 그런데 오히려 그 상태로 유지되시는지 최악의 사태는 벗어나는 바람에, 앞으로 적어도 일주일은 계실 줄 알고 다들 장기전을 준비하려 주위 정리를 하러 잠시 집을 떠난 사이에 막내 삼촌만 곁에 계신 채로 결국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해서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멍했다랄까. 내가 정말 그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은 장례도 끝나고 장례차가 나가기 직전부터였다. 장례차를 타러 가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니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혼났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눈물이 울컥울컥 하면서 심장이 찢어질 듯 아프고 그 슬픔이 와닿았는데, 긴 시간을 이용해 간신히 울음을 멈추는 듯 했다. 하지만 가장 마음이 아팠던 때는 관을 내리려던 때였다. 평소에 항상 남을 도와주시고 선행도 많이 하시던 할머니의 인자하신 웃음이 가득한 영정사진을 보자 눈물이 쏟아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누가 영정 사진을 그렇게 웃고 있는 사진으로 골랐는지! 어떻게 그렇게 밝게 웃고 계신 사진을 보고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때는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이후로도 할머니 생각만 나면 눈물이 철철 나던 것이 1년 쯤, 이젠 7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그 사진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할머니 이야기를 깊이 해도, 할머니 생각을 깊이 해도 계속 계속.


그 때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심지어 할머니를 떠나보내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부모님은 어떻게 떠나보내야 할지 비록 수십년 뒤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두려움이 온 몸을 휘감는 것만 같았다는 것이다. 다 커서 가족을 떠나보내본 사람은 우리 나이 대에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우리집처럼 조부모님과 항상 같이 사는 집이 상대적으로 적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겠지만, 가족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내 몸의 반쪽을 도려내는 아픔으로도 비견할 수 없을만큼 길고 깊은 슬픔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후회하지 않게 잘하자.
by 빙♡ | 2006/08/13 20:36 | 소 소 한 일 상 들 | 트랙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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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Inuit Blogged at 2006/08/14 19:24

제목 : 할머니, 나의 할머니
요즘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내 또래의 사람들에게 할머니는 특별한 존재이다. 인자하기로 치면 아이를 망칠수 있을만큼 손주들에게 인내와 사랑을 주시고, 엄격하실 때는 눈물이 찔끔나게 호통도 치시며, 무엇보다도 같이 살면서 어린시절의 좋은 벗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 * * 울 할머니로 따지면, 내게는 몹시 특별한 분이시다. 할머니는 두 자제분만 두신채로 스물일곱 한창의 나이에 청상이 되셨다. 상고까지 마쳐 돈을 잘버셨던 할아버지 덕에 매우 넉넉했다던.....more

Commented at 2006/08/13 20: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에타 at 2006/08/13 21:07
명복을 빕니다. 제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은 아직 건강하신데- 지금부터라도 잘해야겠군요...
Commented by 빙♡ at 2006/08/14 01:22
비공개// 그러셨군요.. ㅠ.ㅠ 맞아요. 평소에는 여러 생각이 많다가도 막상 닥치면.. 웃는 영정은 일부러 그러는 걸까요? ㅠ.ㅠ 저도 정말 슬펐어요;;

에타// 감사합니다. 정말; 계실때는 그만큼 못느끼는 것 같아요 ㅠ.ㅠ 저도 자꾸 잊어버려 실수하기도 하지만 자꾸만 되돌아보면서 부모님과 외할머니께라도 잘해드리려구요..ㅠ.ㅠ;
Commented by 너프 at 2006/08/14 10:45
부모님 문제는..항상 후회하게 되는거 같아요. 잘 해야겠지 하면서도 금방 소홀해지고...에휴..
Commented by lovepool at 2006/08/14 15:40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땐..정말 말그대로 멍..했죠. 달리 그것을 느끼고 그럴 여유도 없었던것 같습니다. 그때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겪을 상황을 생각하니 그냥 한없이 가습만 답답해졌던 기억이납니다.
부모님에 대한 짐을 그 자식이 덜어가지 않나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Commented at 2006/08/14 15:4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빙♡ at 2006/08/14 15:59
너프// 네, 항상 후회하면서도 순간 순간에는 실수를 하곤 하네요 ㅠ.ㅠ

lovepool// 그렇군요.. 짐을 덜어간다는 말씀이 와닿네요.. 저도 앞으로 세번이나 이 일을 겪어야 한다니 마음이 답답해지더라구요..

비공개// 이런; 어쩌다 그런일이 ㅠ.ㅠ; 링크도 옮기겠습니다- ㅠ.ㅠ 힘내세요-
Commented by Frozenblue at 2006/08/15 03:44
저도 최근에 겪은 일 때문인지 이 글이 가슴에 박히네요. 점점 두려움이 커집니다.
Commented by 빙♡ at 2006/08/15 12:41
Frozenblue// 가족분이 몸이 안좋아지셨나요? ..힘내세요 ㅠ.ㅠ 쾌차하시길 기원합니다. 만약, 만약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지금부터라도 후회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네요....
Commented by 수국 at 2006/09/09 16:13
이오공감으로 왔다가 문득 이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작년에 갑자기 할머니와 이별하게 되어서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란것을 처음으로, 진심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인것 같습니다 이건..^^ 빙님의 글자 하나하나에 마음 깊이 공감하며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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